메세지를 입력하세요.

홉이든 1년을 돌아보다

- November 30, 2018 -

농한기의 시작

사과대추와 벼 타작으로 바쁜 10월도 다 갔다. 해도 많이 짧아지고 일 년이 서서히 마무리되어간다. 자연의 순리대로 농부의 삶은 정해진다.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날씨 변화에 동화되어 생활한다. 말이 그렇지, 농사 일년차인 우리는 지금껏 그저 일에 떠밀려 온 것만 같다. 아직 일은 남았다. 가을엔 그저 들에 널린 것들을 자꾸자꾸 집으로 가져와야 한단다.


곶감 만들기

마당에 딱 한 그루인 감나무. 손질을 해줘야 해걸이1도 않고 굵고 실한 감을 얻을 수 있지만 바쁜 영농일정 가운데 감나무까지 신경을 쓰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엔 어찌나 많이 열렸는지 가지가 부러질 지경이다. 높은 곳은 감을 따려면 가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께 혼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실제로 감은 그렇게 가지를 부러뜨려 수확한다 하니 기억해두자. 꼭대기 부분은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다. 따놓은 감을 옮기는데 꽤나 무겁다. 같은 한 상자의 무게가 사과보다 더 무거운 듯하다 하니, 엄마는 단단해서 그렇단다. 이렇게 단단한 감이 쫀득쫀득 곶감도 되고 말랑말랑 홍시도 되는 게 신기하다.

곶감을 만들자. 엄마의 곶감을 먹기만 했지 만들어 보는 일은 처음인 스테이시. 감을 깎다가 혼났다. 꼭지는 남겨야 하는데 깔끔하게 제거해 버려 다시 배웠다.

“매달려면 꼭지가 있어야 안 되겠나?!”

가지를 부러뜨려 수확하는 또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껍질을 깎을 땐 목장갑을 끼면 덜 미끄럽다고 본을 보이시는데 스테이시는 그 위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달려들었다. 깎는 일은 손아귀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적은 양이라도 혼자서 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하다. 이런 수고스러운 일을 시골의 여인들은 혼자서 해 왔다. 나중에 스테이시는 어떨까. 남편과 같이 하고 있으려나. 서비스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묵묵히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깎은 감은 플라스틱 곶감 걸이에 꽂아 그늘 한 켠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250개 정도 될 것 같다. 가을바람에 스무 날 정도 말리면 겉에 하얀 분이 나온다. 곶감 전용 상자에 담아 포장하면 연말에 어엿한 선물로 줄 수가 있다. 나눌 수 있음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콩 타작

11월 하순. 가을걷이의 마지막인 콩 타작을 하는 날이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다. 스테이시는 마른 콩단을 들어 올려 저니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고, 저니는 탈곡기 안으로 콩대를 넣는 일을 맡았다. 옛날엔 집집마다 구형 콩 탈곡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빌려 와 쓴다. 예전과는 달리 농사 규모로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하루 빌려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일기 예보를 주시하며 비 오는 날을 피해 미리미리 예약해 둬야 작업에 무리가 없다.

털털거리는 탈곡기 안으로 콩줄기가 들어가면 작업은 순식간이다. 노랗고 동그란 콩이 우수수 떨어져 자루에 담긴다. 기계는 언제 봐도 신기하다. 말썽만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콩줄기가 기계에 낄 때가 있는데, 제거하려면 무척 번거롭다. 그런 이유로 콩은 바짝 말려야 하고, 바짝 마른 만큼 작업할 때 먼지가 엄청나다. 다음 해엔 마스크를 쓰도록 하자.

수북이 담긴 자루에서 콩을 한 줌 꺼내보시더니 부모님은 알이 작지만 농사 잘 됐다 하신다. 올해 수확한 콩으로 만든 두부는 또 얼마나 고소할까. 겨울이 기다려진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무모한 도전, 홉 증식

홉을 증식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 종자 번식과 영양체 번식이 있다. 종자 번식의 장점은 단 시간 내 대량으로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지만, 발아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 시설과 전문 기술을 보유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지난봄 인터넷으로 구입한 미국산 씨앗으로 발아 실험을 해보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적정 시기를 놓친 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인 듯하여 다음 해에 다시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암수 구별과 품종특성이 뚜렷해야 하는 홉의 특성상 종자 번식보다는 영양체2 번식이 일반적이다. 뿌리의 일부분을 잘라 심는 방법으로, 원뿌리는 최소 3령 이상은 되어야 활착이 우수한 영양체 번식을 기대할 수 있다. ‘영양체’는 다른 말로 종근 또는 구근이라 하고, 영어로는 ‘라이좀(rhizome)’으로 불린다. 우리가 첫해에 100주 심은 것이 국내에서 증식된 종근인데 주당 가격이 너무 높아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줄기 삽목3. 해외 자료에 따르면 홉 삽목은 활착률이 낮아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되어 있지만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작물의 삽목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포도 삽목 자료를 참고하였다. 가을에 채취해 둔 홉 줄기를 저온창고에서 꺼내와 배수가 잘되는 부드러운 모래통에 넣어두었다. 결과는 또 실패. 줄기에 뾰족하고 나와있던 것은 생장점이 아니라 죽은 곁가지의 흔적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채취한 줄기는 그해 생장을 끝내고 남은 부산물일 뿐, 이듬해 돋아날 순은 새 뿌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다음 봄에 새순을 채취해 삽목해 보기로 하자.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이런 경험과 공유가 다른 홉 농가와 새로 시작하는 홉 농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기록을 남긴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농한기가 온다

귀농 첫해 농한기가 닥쳤다. 갑자기 일이 뚝 끊긴 것에 당황한 우리는 각자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였다. 저니는 이미 생각해둔 수제맥주 수업을 듣기로 결정하였고, 흔치 않은 작물 홉을 하면서 맥주 외에 적용할 데가 없을까 하던 중 스테이시는 천연비누 수업을 골랐다. 그리하여 스테이시의 동생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한 달 살이가 시작되었다.


수제맥주 배우기

맥주 만드는 사람들은 다 아는 “수수보리 아카데미”. 저니가 맥주 만들기를 배울 곳이다. 경기대와 농업기술 실용화재단이 공동 설립한 양조 교육기관으로, 맥주뿐만 아니라 전통주 등 다양한 발효주와 관련된 커리큘럼이 있었다. 신청한 수업은 매주 1회씩 10주 과정으로 홈브루잉(Homebrewing)4의 기초과정을 다룬다.

이번 기수의 강사님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강릉의 유명 양조장인 버드나무 브루어리 출신이었다. 통역서비스가 제공되어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었고, 오히려 외국인으로서 그만의 시각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홈브루잉은 말 그대로 집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맥주를 만드는 것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강조가 인상적이었다. 열 번의 수업으로 누구나 바라는 맛있는 맥주 만들기란 어렵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강사를 향해 맛난 맥주 만드는 레시피를 내놓으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수강생도 있었다.

‘맥주는 과학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정량화되어 있고 주위 환경을 컨트롤해야 한다. 요리를 못하는 저니에게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맥주를 만드는 데엔 여러 과정이 있었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맥주보리를 분쇄하고 당화의 과정을 거치면 다시 끓이고 식히고 발효한다. 홉 농부로서 가장 관심 가지던 홉의 쓰임새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맥주의 향과 쓴맛을 내는 것이지만, 실제 맥주를 만들어보니 그 폭이 훨씬 넓었다. 맥즙(당화 시켜 당이 녹아든 물, 영어로는 워트 wort)을 끓이면서 목적에 따라 시간을 달리하여 홉을 넣는다. 쓴맛이 목적이라면 보일링이 한참일 때 홉을 넣고, 향을 낼 목적으로는 보일링이 끝날 무렵에 홉을 첨가하게 된다. 또한 발효과정에서 향을 극대화하기 위해 드라이호핑(dry hopping)이라는 기법도 쓰는데, “맥주와 홉”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내년에는 우리 홉으로 직접 맥주를 만들어봐아겠다.

홈브루잉 기초 과정

  • 맥주의 이해 및 양조 기초(Introduction to homebrewing)
  • 분쇄와 당화(Milling and Mashing)
  • 볼라우프, 라우터링, 스파징(Vorlauf, Lauter and Sparging)
  • 보일링과 칠링(Boiling and Chilling)
  • 당화추출물 양조(Brewing wiht Extract DME & LME)
  • 발효조, 발효 그리고 효모(Fermentors, Fermentation and Yeast)
  • 2차 발효와 병입(Racking, Secondary and Bottling)
  • 단축형 홈브루잉 워크샵(Condensed Homebrew Workshop)
  • 양조의 변수, 개념, 자원(Brewing Parameters, Concepts and Resources)
  • 양조 레시피 계산 및 종강(Brewing Calculator and Closing Celebration)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홉이든”이 제공한 데모용 건조 통홉을 접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천연비누 배우기

불가리아 장미농장에서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장미꽃을 증류해서 얻은 에센셜 오일로 향수는 물론, 립밤과 비누를 만드는 과정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홉도 정유를 함유하고 있는 데다가 품종마다 향이 다채로워 에센셜 오일로 활용이 가능하다. 시트러스를 기본으로 꽃향, 허브향, 솔향, 온갖 열대 과일향, 코코넛 향, 심지어 흙냄새와 담배향까지 복합적인 속성을 가진다. 맥주 외에도 고부가 상품으로 홉의 쓰임이 확장될 수 있겠다 싶어 천연비누 수업을 신청한 것이다.

방이동에 위치한 천연비누 공방은 서울 동생네서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다. 털털한 성격의 강사님은 섬세한 손을 가지고 계셨다. 저니의 맥주 수업과는 다르게 일대일 수업으로 하루 종일 4회 정도 진행되었다.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고 점심도 함께 하며 친분이 조금 쌓일 즈음에 예정된 수업은 모두 끝이 난다.

비누를 만드는 과정은 화학 시간에 가깝다. 식물성 오일과 가성소다, 정제수를 가열하여 식힌다. 천연비누는 식물성 오일과 에센셜 오일 등의 천연 원료를 쓰는 제품으로 고급 원료가 듬뿍 쓰인다. 차가운 겨울이라 변하는 성상에 따라 시간 조절을 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천연이나 수제라는 말이 들어가면 원료뿐만 아니라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준비한 비누 액체가 식기 시작하면, 원하는 향(에센셜 오일)을 첨가하고 실리콘 틀에 부어준다. 이때, 색소를 써서 원하는 무늬와 색을 연출할 수도 있는데 처음 하는 스테이시에겐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다음은 비누화 반응5을 거쳐 젤리에서 고체로 바뀌는 과정이다.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온장고에 넣어 일주일 이상 보관한 뒤에 적당히 굳어지면 컷팅을 한 다음 습기 없는 곳에 건조, 숙성하면 비누가 완성된다. 최소 4주가 걸리는 작업이다.

비누 수업을 모두 마치고 드는 생각. 언젠가 비누 만드는 수업이 필요하다면 전문 강사를 초빙하는 것이 낫겠다. 필요한 도구나 장비만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최소의 강사 소양을 갖추려면 열 번은 만들어봐야 할 터인데, 스테이시는 그 길에 흥미가 일지 않았다. 그저 만들어진 비누를 선물하는 기쁨이 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동생과 겨울 소품으로 예쁘게 포장한 다음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선물하였다. 앞으로 홉향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 천연비누나 화장품 공방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천연비누 강사 과정

  • 천연비누의 역사
  • 천연비누의 제작 프로세스
  • MP비누
  • CP비누
  • 천연비누 제작에 필요한 각 재료의 상세
  • CP비누 용도별 제작방법
  • MP비누 실습
  • CP비누 마블 베이스 제작기법
  • CP비누 마블 실습 3가지 기법
  • 약산성비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홉이든 1년

3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시골 삶에 적응하고 농사일을 맛봤던 시간이었다. 새로운 작물 홉을 이해하고, 전자상거래로 사과대추를 판매하는 도전은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고 본다. 상상하던 귀농인생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여유로울 것만 같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 같은 것으로,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일상은 무척이나 바쁘다. 아직은 농소득 만으로는 생활이 안되기에 당분간 저니는 농사일과 IT일을 병행해야 할 듯하다. 그럼에도 부모님과 추억을 쌓고 농사를 배우는 일은 분명 즐겁다. 더 늦기 전에 잘 내려왔다 싶다.

한 해 동안 고생한 우리. 서로를 응원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함께해주서 고마워. 토닥토닥.

내년도 잘 부탁해~

홉이든 1년 영상

  1. 해걸이 - 일정기간 동안 작물재배를 하지 않고 쉬는 것으로 과실수가 한해는 많이 맺었다가 한해는 적게 맺기를 반복하는 현상. 

  2. 영양체 - 생식에 직접 관계하지 아니하고 개체의 영양에 관계하는 부분. 종자식물은 뿌리ㆍ줄기ㆍ잎 따위가, 동물은 생식 기관 이외의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3. 삽목 - 식물의 가지, 줄기, 잎 따위를 자르거나 꺾어 흙 속에 꽂아 뿌리 내리게 하는 일. 

  4. 홈브루잉(Homebrewing) - 내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설계해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것 

  5. 비누화 반응 - 고급 지방산 에스터과 강한 염기가 만나 알코올과 비누 덩어리가 생성되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