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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향이 손에 가득

- July 14, 2018 -

홉 수확은 언제 하나요?

4월 중순에 홉 영양체를 정식하고 두 달이 지났다. 보기 좋게 열린 꽃들은 나날이 통통해져 가건만 초보 농부는 도무지 언제 수확을 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선다. 기댈 곳은 인터넷과 홉 관련 서적이 전부. 해답은 대략 아래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구화 단면의 루풀린이 황금색으로 변했을 때
  2. 구화를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날 때
  3. 구화의 건물1 함량이 23% 정도 되었을 때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것 밖에는 확신이 없던 7월의 어느 날. 고릴라 브루잉 대표 폴(Paul)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우리 홉 농장에서 당신들을 좀 만났으면 합니다. 수확을 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나요?”


고릴라 홉 농장

지난 부산 방문 때 남겨둔 명함을 보고 연락했다는 폴. 부산 광안리에 위치한 고릴라 브루잉은 영국인 폴이 헤드 브루어(수석 양조사)이자 대표로 있는 곳으로 국내 몇 안 되는 홉 농장 보유 양조장이다. 홉밭 경험이 부족한 우리에게 그들의 농장을 구경하는 것은 크나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수확할 때를 판단할 수 없어 망설이던 차에 수확일이라니 더욱 잘됐다 싶었다.

경북 성주군 어느 언덕길 꼭대기에 위치한 홉밭. 부산에서 오가며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농장 근처에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홉 농사 경험이 있는 탈북민2이라고 얼마 전 개인 사정으로 그 지역을 떠나게 되었고 수확이 급해져 우릴 부른 것이었다.

의성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농장. 언덕길이 내리막으로 바뀌는 그 분기점에 파이프 지주대가 보였다. 역시나 관리를 못한 탓에 잡초가 무성했지만, 홉은 유인된 줄기마다 풍성하게 열려있었다.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홉밭은 본 적이 없기에 마냥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감탄하고 있는 사이 폴과 테리(Terry)가 도착했다. 테리(캐나다, 70대)는 부산과 성주를 오가며 임시로 홉밭을 봐주고 있었다. 한국인 둘과 외국인 둘. 잠시 세계여행 때 농장 체험하던 느낌이 들었다.

고릴라 홉밭은 유인줄이 두꺼운 PP로프로 되어 있다. 여러 해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줄기마다 일일이 사다리에 오른 채로 따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7월 중순의 땡볕 더위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규모로 홉을 재배하는 곳은 기계화가 되어 있지만 한국의 홉 재배는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상태로 일일이 손으로 따줘야 한다. 기계화는 그림의 떡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욕심부리지 말고 우리 속도대로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관리가 부족했던 탓에 천 평 즈음되는 넓은 밭의 절반은 풀무더기로 덮였다. 일이 줄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수확하니 성인 키 만한 큰 자루에 홉이 가득 찼다. 부피는 컸지만 막상 들어보면 한없이 가볍다. 단 한 가지 좋은 것은 홉 특유의 상쾌한 향이다. 수확하는 내내 기분 좋은 향을 맡으며 작업할 수 있어 좋았다.

고릴라 브루잉은 생홉을 그대로 양조에 사용해 시즌 맥주를 만든다고 한다. 생홉이 들어간 맥주는 어떤 맛일까. 폴은 도와주어 고맙다며 시즌 맥주 마시러 한 번 오라고 초대를 해주었다. 그래 그때 봅시다. 홉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또 하나 만들어간다.

돌아오는 길에 땀과 홉 냄새가 진동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감이 왔다.

“언제 수확을 해야 할지 알겠어.”


와일드웨이브 웰컴투 홉이든

홉 재배. 보통 첫해는 수확을 하지 않는다. 다만 홉이란 작물을 이해하고 수확시기는 언제인지 루풀린은 어떤 건지 알아가기 위해 일부 수확을 하였다. 이번엔 부산 송정에 있는 양조장 와일드 웨이브(이하 ‘와웨’) 팀과 함께였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지인 최승하 씨를 연결고리로 일꾼이 넷이나 늘었다. 초록의 홉 줄기 사이로 통통 튀는 청년 4인방의 움직임은 청춘 그 자체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맥주를 사랑하는 승하 씨는 맥주 투어 자전거 여행도 두 차례 한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홉은 처음이라며 마냥 신나 보였다. 와웨의 털보 브루어 준표 씨는 홉을 따서 신기한 듯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는 등 기뻐 보였다. 모두 다 함께 수확하니 한 골을 두 시간도 안 되어 수확을 마쳤다.

홉을 한참 따다 보면 손에 찐득하게 묻어나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루풀린이다. 실제로 이 황금색의 가루가 맥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맥주를 영어로 beer 또는 hop라고 부르는 이유는 맥주에 반드시 홉이 첨가되어야 하기 때문으로 홉은 맥주 고유의 맛과 신선도, 특유의 향미와 상쾌한 쓴맛을 부여하고 잡균 번식을 억제하며 특히 부패를 방지하여 대량적인 유통을 가능하게 한다. 루풀린의 함량이 높고 색이 또렷하며 신선한 것이 품질 좋은 홉이다. 첫해에 수확하지 않는 이유는 이 루풀린의 함량이 낮아서다.

끈적임의 정체는 정유(essential oil) 성분 속 테르펜이란 지용성 물질 때문인데 송진을 떠올려 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누가 누가 일을 많이 했는지는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작업을 마치고선 클렌징 오일로 닦아내면 쉽게 해결된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키워낸 홉을 수확한 하루. 너와 함께 우린 어떤 길을 열어갈까.

“오늘을 심고 내일을 열다.”


보리 물은 고양이, 안동맥주

우리 지역 의성엔 수제 맥주 양조장이 없다. 수제 맥주를 취급하는 호프집 조차 없지만,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문경엔 ‘가나다라’ 브루어리가, 안동엔 안동 맥주가 있다. 대도시에선 크게 유행하고 있는 수제 맥주가 경상북도엔 아직 생소한 상태이다. 홉을 심고 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브루어리와 홉 농장을 찾아다녔다. 한 번은 안동에 일이 있어 안동 맥주를 들렀는데 인상 좋은 사장님이었던 기억이 난다. 안동 맥주의 로고인 고양이가 지금은 맥주보리를 입에 물고 있는데 언젠가 홉을 물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2차 수확은 안동 맥주에서 도움을 주셨다. 지난번엔 시기가 일러 사다리를 놓고 상단부만 수확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유인줄을 싹둑 끊어 지상에서 편안하게 작업하였다. 마침 여행자 워커웨이어 두 사람도 함께였던 터라 더욱 여유 있었다. 이따금 구름이 햇살을 가려줄 때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직 홉을 잘 모르는 우리. 하지만, 목적지는 있다. 수제 맥주 양조장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농업에 적용하여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 희미한 빛을 따라 그저 오늘도 나아간다.


한없이 가벼운 홉

수확한 홉은 24시간 이내 건조해아한다. 방치했을 경우 초록의 꽃잎은 갈변하기 시작하고 루풀린은 이성화되어 특유의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재배량이 늘어나면 전용 건조기가 필요하겠으나 시험 생산인 올해는 전통적 방식으로 햇볕에 말렸다. 마당에 넓게 깔린 연둣빛 꽃이 참 이쁘다. 햇살이 따가워 금방 마를 것 같다. 가뜩이나 가벼운 홉은 그 무게가 건조 후 많게는 1/5로 줄어든다.

해방 이후 퇴보했던 한국 농업은 최근 50년 동안 상당 부분 현대화를 이루었다. 농지확장, 용수확보, 경지정리 등의 개발사업의 시행과 비료, 농약, 농기구의 개발 보급으로 식량 증산과 영농의 기계화를 이룩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밭작물은 노동집약도가 높다. 홉은 생력화가 가능한 작물이다. 앞으로의 농업은 어떤 작물이든 노동력이 절감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홉이 그 길을 열어주는 작물이 되길 바란다. 홉은 희망이니까.


2mm의 희망

봄에 씨앗에서 발아한 홉은 그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발아율 3%. 그중에서도 활착 하지 못하고 죽어간 게 태반이고 겨우 살아남은 것이 12개다. 무사히 올여름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개중에 상태가 좋은 것은 뿌리가 튼실하고 잎이 무성한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2mm의 작은 씨앗이 단단한 껍질을 까고 싹을 틔워 뿌리를 뻗어간다. 그 뿌리가 5미터도 더 되는 덩굴을 키워내다니 경이롭기 그지없다.

홉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실험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지만 귀농 1년 차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무척이나 바쁘다.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니 답답함이 크다. 인터넷엔 해외 자료가 제법 있지만 환경과 여건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낀 건 이때부터다. 농업대학을 다시 가기엔 부담되고 해당분야 자격증을 도전하기로 했다. 특히 지금 하고 있는 종자업 관련된 자격증을 목표로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 맘 속에도 2mm만 한 도전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먹을만치 하는 농사

농작물은 주작물과 보조 작물, 다른 말로는 소득작물과 취미 작물로 나뉜다. 우리의 경우 소득작물은 “사과대추”와 “홉”이다.

취미 작물은 부모님과 함께 가꾸는 스무여 가지 되는 기타 등등이 있다. 일명 ‘먹을만치 하는 농사’로 텃밭에, 논과 밭의 자투리 땅에 짓는 농사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게 도시인이 생각하는 텃밭 규모와는 차이가 크다.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오신 부모님 세대의 농사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에 가깝다. 우선 벼농사를 포함하여 고춧가루 마늘, 참깨 등 각종 양념은 필수 작물이다. 그리고 여름의 시작과 함께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과일만도 예닐곱 가지 되며, 호랑이콩(우리는 ‘유월 콩’이라 부르는 강낭콩), 서리태 등 콩도 종류별로 다 있다. 공판장에 팔 정도의 물량은 아니지만 가족과 친지, 지인과 나누기엔 부족함이 없다. 저니는 처음 시골에 왔을 땐 모두 팔려고 농사짓는 줄 알았단다. 먹을만치 하는 농사이기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제철이면 각양각색의 과일이 풍족하고, 김치를 담글 때도 각종 양념을 아낌없이 듬뿍, 요리를 할 때 마늘, 참기름도 팍팍 넣는다. 맛과 영양이 좋을 수밖에. 좋은 재료로 차려진 맛난 끼니를 한 평생 드셔 온 부모님의 입맛은 아주 고급 레스토랑 레벨이시다.


왕이든 사과대추

귀농을 목표로 우리가 세계여행을 한지 두 해가 지난 2016년 봄. 자식 부부의 행보가 영 내키지 않으면서도 부모님은 천평의 비닐하우스에 사과대추 묘목을 심으셨다.

“사과대추는 인터넷으로 팔아야 된다 카더라. 이왕 떠난 여행 재밌게 하고, 돌아오면 너들이 맡아서 해보거라~”

여행 중에 우리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시고는 생각이 바뀌신 듯했다. 일흔의 연세에 새로운 작물에 도전하는 부모님. 우리의 귀농이 아니었더라도 같은 결정을 했을지 의문이지만 사과대추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묘목을 심은 지 3년이 되는 2018년. 정상 소출이 기대되는 해이다. 우리에겐 귀농 첫해로 일손을 보태고 시기마다 일을 배워나갔다. 농사철이 다가오기 전 맨 먼저 시작한 일은 하우스 시설 보수작업이었다. 해가 갈수록 여름 기온이 높아져 통풍을 좋게 할 목적으로, 기존의 환풍구를 제거하고 천장에 자동개폐기 시설을 만들었다. 이른 봄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순지르기, 가지 들 어매기, 곁가지 정리 등의 작업이 여름까지 이어졌다. 적절한 시기마다 약 방제와 관수 등으로 정성을 들였다. 우리로서는 농사 첫해라 수확량에 대한 비교 데이터가 없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전년도 대비 훨씬 풍성하다고 하셨다. 9월로 접어들자 나무에 매달린 과일이 나날이 굵어졌다. 그제야 수확량에 대한 감이 왔다. 농사는 잘됐고 이제 우리 차례다. 인터넷으로 잘 팔기만 하면 되는데…

인터넷으로 팔기 위해선 포장이 필요하다. 작목반이나 영농조합의 경우 대량으로 주문하기에 합리적인 가격에 농산물 포장재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지역 의성에서 사과대추를 하는 곳은 단 한 곳, 우리뿐이다. 그렇다고 흔하디 흔한 사과박스나 자두 박스에 대추를 담을 수 없는 노릇. 무엇보다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시간을 들여 제품 이름부터 만들자. ‘홉이든’이라는 우리 농장 이름을 짓는 데 1년이 걸렸다. 왕대추라는 이름이 다소 중국풍으로 들리기에 사과대추라는 이름을 쓰되, 상품명엔 ‘왕’이란 단어가 꼭 들어갔으면 했다.

“여보! 왕이 들고 있다 해서 ‘왕이든’ 어때?”

전화 너머로 들리는 스테이시의 말이었다. 기가 막히는 이름이다! 마침 출장으로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을 걷던 차였다.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 거겠지. 세종대왕을 모티브로 사과대추를 들고 있는 로고가 탄생하였다. 그래 ‘의성 왕이든 사과대추’.

브랜드 명이 정해졌으니 박스를 제작해야 했다. 디자인 전문인 저니, 인쇄출판 분야는 처음이라 업체 선정에 골머리를 앓았다. 대구의 몇몇 업체를 찾았으나 추석을 앞두고 인쇄소나 디자인업체는 모두 바쁜 상태. 주문량이 적은 개인 농가라 반기는 업체가 없다. 이쪽 시장에 대한 감이 전혀 없던 우리. 명절 지나면 곧바로 판매를 시작해야 하는데 하루라도 서둘러야 했다. 대구업체는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군의 군 소재의 업체를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예전 부모님 애호박 하실 때 이용한 업체였다. 돌아 돌아 겨우 부모님 손바닥이란 말인가… 점잖은 사장님은 우리의 소소한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시고선 소량 주문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휴~ 한 숨 돌리는 순간이었다.

상품 기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2kg 포장으로 500gm 크기의 플라스틱 용기 4개를 담는다. 이 크기에 따라 아웃박스, 택배 박스를 만들었다. 문제는 선물용 박스였다. 일명 ‘특선 40알’로 크고 예쁜 것만 골라 칸마다 넣어 2단으로 구성하는 상품이다. 시제품 박스를 만들고 여러 번의 조율 끝에 멋진 금박 로고를 달고 탄생하였다. 왕이든 의 시그너쳐 상품이 되길 바라본다.

왕이든 로고 왕이든 브랜드 로고

의성 왕이든 사과대추 박스 의성 왕이든 사과대추 박스


제천 홉 수확 축제와 그녀와의 만남

SNS를 통해 알고 지내던 제천 솔티마을. 홉 수확 축제에 참석하였다. 주도로에서 외길로 한참 들어간 시골마을이 행사장이었다. 올해로 세 번째인 수확 축제장엔 행사 현수막과 홉 줄기로 장식한 포토존, 플로리스트가 직접 만든 홉 리스 등이 조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행사장은 솔티 맥주를 생산하는 ‘뱅크 크릭 브루링’으로, 수확 축제는 식사와, 맥주 시음, 양조시설 견학 코스가 포함된다. 점심으로 준비된 산채비빔밥은 마을 어르신 몇 분께서 도움을 주고 계셨다.

마을에서 홉과 수제 맥주로 이뤄지는 즐거운 축제. 우리에겐 3년 차 선배 농가의 홉 시설과 그 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홉 종근은 영국에서 들여오며 마을에서 생산된 홉은 전량 뱅크 크릭에서 벨기안 스타일 맥주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고추농사짓던 마을분들을 설득해 홉 작목반을 꾸몄고 작은 밭이 모여 대략 3천 평 규모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언제 그렇게 되나’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고추농사를 관행적으로 해오신 어르신들과 소통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된다. 또한 판로와 종근 수급에 대한 고민 등 그간 들어간 품이 얼만큼일지 조심스레 짐작해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홉 밭으로 이동하였다. 이미 수확이 끝난 상태로 홉을 따는 손맛을 보기엔 부족함이 있다. 홉 농부를 만나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행사 중인 관계로 짧은 인사 정도로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솔티 맥주를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보다 경상도 사투리로 얘기 중인 청년이 있길래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는 경북 의성에서 홉을 재배하고 있어요.”

“의성이요? 외할머니 계신 곳인데… 하하. 저는 대구에서 왔고요 수제 맥주 펍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하”

동생이랑 함께 온 그녀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서로를 응원하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녀와의 만남이 어떤 인연으로 맺어질지.

3년 후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곳 풍경과는 많이 다를 테지. 우리의 색깔대로 만들어가고 있지 않을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다.


창녕 따오기 품은 마을축제

축제가 겹친 날이다. 홉 수확 축제가 끝나자마자 제천에서 창녕으로 내려갔다. 지인 부부가 살고 있는 마을에 축제가 있어 설거지도 도와줄 겸 공연도 구경할 참이었다. 이 부부가 사는 곳은 ‘따오기 품은 세진마을’로 창녕 우포늪이 가깝다. 이들 부부도 참 재미나게 사는 사람들이다. 고민의 문제를 던질 때마다 그들은 언제나 단순 명료한 답을 제시한다. 여하튼 흥미로운 사람들로 우리는 그들을 ‘멸종희귀종’으로 부른다. 남해 색시와 부산 신랑이 만나 자전거 여행 후 이곳 세진마을에 정착한 지 2년쯤 되었다. 마을축제에서 마을 아이들과 함께 배운 가야금 연주를 선보인다.

설거지 봉사를 도와 저녁식사 정리를 마쳤다. 무대 설치가 마무리자 하나 둘 조명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이 주인공인 이곳 축제는 마을축제 다웠다. 특히, 평균 70년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시 낭독회는 최고였다. 설거지를 함께 했던 젊은 귀촌 부부가 정성 들여 작업한 것이라는데 갑자기 그들이 좋아졌다. 어둠 깔린 잔잔한 배경 사이로 시 한 소절 한 소절이 이 마을과 여인들의 삶을 읊어내고 있다. 우리는 이곳 마을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에 함께 살아온 듯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윽고 마을 할머니들이 무대로 올라와 합창을 시작한다. 분홍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맞춰 입고서 서로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하신다. 떨리던 목소리는 금세 자신감으로 바뀌어 축제를 달궜다. 무대 앞에서는 멸종희귀종 부부의 가야금과 장구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윽고 마을 사람들과 참가자 모두 사물놀이 한마당으로 어우러졌다. 징과 꽹과리 소리, 웃음소리가 섞여 멀리 우포늪으로 잔잔히 흘러갔다.

  1. 건물(乾物) - 식물의 구성성분 가운데 수분을 제외한 나머지 

  2. 북한의 홉 재배 -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재배하기 시작. 양강도 혜산시, 갑산군, 운흥군 일대가 유명하며 연간 생산량은 약 2,000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