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를 입력하세요.

오늘을 심는다

- December 04, 2017 -

3년 간의 세계여행이 끝나다

5월 말 모심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농번기. 한낮의 찌는 해를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일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나면, 부모님께서 직접 키운 쌀과 텃밭에서 기른 온갖 채소로 맛깔나게 차려진 점심 밥상을 받는다.  머슴밥처럼 꾹꾹 눌러 담은 밥공기를 뚝딱 비우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 드러누우면 스르륵 눈이 절로 감긴다. 보약 같은 낮잠 시간.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 가득 실려진 짐은 마치 세계일주를 할 요량인 듯하다. 고개를 돌리니 스테이시도 함께 달리고 있다. 힘껏 페달을 밟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땀방울이 맺힌다. 오늘은 아무래도 와일드 캠핑을 해야 할 것 같다. 지도를 살펴보아도 근처엔 마을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멈춰 선 곳이 집이고, 내가 가는 곳이 길인 것을.

땅거미가 질 무렵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텐트를 쳤다. 주변정리를 하고 텐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극지방의 밤하늘을 드리우는 오색찬란한 커튼. 오로라는 지평선 끝과 끝으로 이어져 한참을 춤을 춘다. 넋이 빠져 보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한밤에 솔솔 불던 바람이 텐트를 흔들더니 이내 폭풍으로 바뀌어 결국 텐트 폴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부러진 폴대는 ‘부욱’하는 소리를 내며 플라이를 찢어 놓았다. 이대로 끝인 건가. 누군가 몸을 흔든다.

“여보! 여보! 일어나요. 오후 4시예요. 밭에 일하러 가야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여행은 이제 정말 끝이 났다. 정신을 차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후 일과를 위해 비닐하우스로 향한다.

보다 자세한 3년간의 여행을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확인하세요.
‘플라이바스켓의 자전거 세계여행’ 보기

이미지 자전거 세계일주 중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앞으로 뭐 먹고 살지?

귀농을 목표로 세계 각국의 농장을 둘러보기로 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30대 후반, 서울에서 터전을 잡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과 경제적으로 보장된 노후를 그릴 수 있는 시기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귀농은 둘째 치고, 일단 여행을 간다고? 가족, 친구, 지인 모두 어이가 없어했다.

여행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하루하루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이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내일은 그날 가서 고민하고 오늘에만 집중하자. 대신, 언젠가 내일을 살 날을 후회 없이 맞을 수 있도록 충실한 오늘을 살자고 다짐했다.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거슬림이 없도록 하되, 우리가 경험한 것,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가 더 많이 웃고 그렇게 해맑은 이유는 뭘까? 지금껏 우린 무얼 위해 살아온 걸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비교하며 정작 나 자신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그런 의문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준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과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타임라인에서 분발해 준 많은 분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을 심는다

3년은 꽤 긴 시간이다. 군필자라면 군대 기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긴 만큼 때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 회의가 몰려올 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여행을 위한 하나의 장치가 필요했다. 위기가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지금은 인생철학이 되어 버린 그 문장.

‘오늘을 달리고, 내일을 심는다’

여행 전후로 많은 장기 여행자를 만나고 또 그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꿀맛 같은 여행에도 슬럼프가 있다는 것. 스스로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 어떨 땐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여행 1년 즈음이었다. 살던 곳으로부터 소식이 들려올 때다. 아파트를 사고 아이를 낳고. 모두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밖에서 바라볼 때면 우리는 과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먼길 떠나야 할 수 있는 진귀하고 소중한 경험들이 순간 따분해지고 어마어마한 대자연도 시큰둥 해 질 때가 있었다. 때마침 들려온 직장동료로부터 온 달콤한 제안에 귀국 비행기를 알아보기도 했었다.

그때 우린 그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을 달리지 않는데 어찌 내일을 심을 수 있겠나. 우린 달리지 않고 있던 것이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힘껏 페달을 밟아 닿은 곳은 칠레의 블루베리 농장. 호스트 파트리시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나는 그 문장을 떠올렸다. 오늘을 달리지 않는데 내일을 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힘껏 페달을 밟아 닿은 곳은 칠레의 블루베리 농장. 농장 주인 파트리시오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예전에 벌목꾼이었어. 배우지 못한 우리 4형제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나무 베는 것뿐이었지. 물론 대대로 이어온 그 가업이 싫었던 건 아니야. 수입도 꽤 괜찮았거든. 그런데 우리 자식에게까지 벌목을 시킬 순 없지 않겠어? 잘라내기만 하는 일 말고 이제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

그가 블루베리 농장을 하게 된 연유를 그렇게 말했다. 칠레 농부의 이 말은 우리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어떤 내일을 열 것인지는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 오늘을 달리던 일을 마치고 이제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오늘을 심고, 내일을 열다’

보다 자세한 여행이야기는 아래의 이야기를 참고하세요.
‘칠레 블루베리농장 에피소드’ 보기